장마직전 폭염을 뚫고 간 전주한옥마을
아스팔트에 달걀프라이도 가능할 것 같은 더운 날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붐비는 인파에 한 번 놀라고
예상외로 젊은층이 대부분이어서 두 번 놀랐다
한옥마을이라면 당연히 나이 지긋한 분들만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관광객답게 호기심어린 기웃기웃을 하다
조용한 골목에 들어서니 보이는 교동다원
블로그에서 본 기억에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옛적 선비들의 서원인양 고즈넉하고 적막한 분위기
담 하나 골목 하나 차이로 이런 분위기라니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도 더위가 쉬이도 물러간다
이런 선선함에는 따뜻한 차도 꽤 잘어울리는구나
덥다고 냉수에 에어컨을 찾는 요즘 우리 모습과는 다른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시원함
이것이 옛 사람들의 피서구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호젓해 진다.
괜스레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교동다원을 나서니
발걸음도 관광객의 잰걸음에서 여유가 생긴다
카메라 대신 눈이 먼저 간다
최명희 박물관으로 가벼운 산책하듯 걸음을 옮기다 보니
한옥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공장건물이 보인다
설명을 보니 원래 BYC공장이었던 것이 불에 타고 그것을 갤러리로 재탄생 시킨 것
기와지붕이 넘실거리며 능선을 이루는 한옥마을 한복판에 공장 건물이라니
게다가 그것이 다시 갤러리로 변했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겨 들어가본다
가보니 단순히 갤러리가 아닌 작가들의 생활 맟 작업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옥마을 곳곳에 먕장 혹은 기술 전수자들의 작업공간 겸 전시장이 생각났다
전주한옥마을이란 단순히 한옥을 모아논 관광지가 아닌
전승 계승되는 우리의 전통예술과 새롭게 탄생하는 현대예술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관광객과 현지주민이 함께 모이는
거대한 "장" 이었다
이것이 한옥마을의 생동감과 저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갤러리를 나와 바로 옆 최명희 박물관으로 향한다
한국소설사에 단 한작품만으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고
요절로 많은 이들을 안타갑게 한 최명희 선생의 작업실을 박물관으로 꾸몄다는 이 곳은
캘리그래피와 명필로 이름 높았던 선생을 기린 곳 답게
입구부터 - 비록 뒷문이지만 - 아기자기한 "손글씨"들이 손님을 반긴다
선생의 혼불 자필원고, 편지, 이력서 같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혼불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인 듯
이제는 주인을 잃었지만 단정한 서재와 정갈한 필체가
치밀한 연구와 조사로 혼불을 완성한 선생의 생전을 보는 것 같다
한옥마을 곳곳에서 눈에 띄던 느린 우체통
슬로시티라는 명성과 썩 잘 어울리는 듯
마침 박물과 마당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글씨로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지
아침나절의 호젓함도 여유도 반나절정도 지나자 오후의 더위에 두손두발다들고
시원한 것을 찾아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유명하다던 외할머니 빙수를 먹으려다 늘어선 줄을 보고 깔끔하게 포기
뒤편을 보니 예쁜 밴이 세워져 있는 홍차가게를 발견
한옥을 깔금하게 리모델링 한 가게 안은 에어컨 바람이 솔솔 나오는 천국
예쁜 메뉴판에 추천음료 '베리굿'을 시킨다
새콤달콤한 '베리굿'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베리굿!"
이쪽 골목에선 전통차와 팥빙수를 팔고 한학을 가르치고
저쪽 골목에선 예쁜 카페에 동네 엄마들이 모여 아이 키우는 이야기며 남편 흉을 보다
유치원차 시간에 맞춰 우르르 아이 마중나가는 전주한옥마을의 모습
살아서 움직이는 삶의 터전인 한옥마을이 모습에서
보통의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감상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라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전주 막걸리집을 왔다
원래 전주는 막걸리 골목이 많은데
동네 분들이 추천해준 한옥마을 안에 있는 가연막걸리
막걸리 한 통을 시키면 안주로 한 상 가득 차려주는 전통의 전주식 막걸리집
여기도 관광객과 퇴근 후 회식하는 공무원들
방학이라 집에 내려온 아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단란한 가족
농활을 다녀와 뒤풀이 하는 대학생들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십인십색의 사람들이 어울어져 전주한옥마을 여러 스펙트럼을
반짝반짝 빛내며 왁자지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전주한옥마을 머리와 가슴에 묘한 울림을 주는 곳이다